‘사형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가 보낸 수의, 그리고 마지막 편지

By 김 연진

지난 1862년 5월 6일(음력 4월 8일)에 태어나 1927년 7월 25일 생을 마감한 조마리아 여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강하게 일본의 탄압에 맞서 싸운 여성 독립운동가였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활동했으며 중국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사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는 ‘독립운동의 어머니’이자, ‘정신적 지주’라고 불렸다.

하지만 조마리아 여사는 독립운동가 이전에 누군가의 가족이요, 어머니였다.

그의 아들은 바로 안중근 의사.

연합뉴스

3.1여성동지회 박용옥 회장은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의 항일 구국적 생애’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만든 것은 그 어머니의 ‘모성 리더십’이었다”

아들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결심을 적극 지지했다.

또한 1907년,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을 결심했을 때,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고 격려하던 어머니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중국 대련의 뤼순감옥에 수감됐다.

이듬해 2월 14일, 안중근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일본에 항거하며 담담히 죽음을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사형 집행 직전의 안중근 의사 / 연합뉴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위 내용은 정확한 자료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중 일부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조마리아 여사는 목숨을 구걸하면서 살려고 몸부림 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목숨을 버리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이후 안중근 의사에게 수의를 보냈고,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어머니의 수의를 입은 채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에도 조마리아 여사의 독립운동은 계속됐다. 아니, 오히려 더욱 단단해졌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두 아들 안정근, 안공근에게 도움을 줬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 적극 후원하는 등 일본의 탄압에도 의연하게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먼저 눈을 감은 큰 아들 안중근 의사를 위해,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더욱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리라.

오로지 나라만을 생각하며 일본과 싸워온 조마리아 여사는 1927년 7월 25일, 그토록 보고 싶던 큰 아들의 곁으로 떠났다.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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