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바오젠 거리의 몰락 “적나라한 제주 관광 현주소”

누웨마루 거리 1년 “명칭만 바뀌고 나머진 그대로…상권 죽었다”
개발사업 통한 관광진흥 한계…중국 관광객 의존 넘어 다변화해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제주 속 작은 중국’이라 일컬어졌던 ‘바오젠 거리’가 ‘누웨마루 거리’란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어 공식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긴 거리는 이름을 바꿔 단 뒤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을까.

누웨마루 거리 상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며 제주 관광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과제를 짚어본다.

◇ 누웨마루 거리 1년 “변한 건 없었다”
지난 11일 오후 제주시 연동 누웨마루 거리. 1년 전 화려한 레드카펫을 깔고 거리 선포식이 열렸던 장소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누웨마루 거리는 예전 바오젠 거리의 새 이름이다.

바오젠 거리는 중국 바오젠 그룹이 2011년 9월 보름간 8차례에 걸쳐 1만4천여명의 인센티브 관광단을 보내온 데 따른 화답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중국인들이 반드시 찾는 ‘관광 명소’로 떠오르면서 상가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뛰고, 기존 영세상인들이 삶의 터전에 서 내몰리는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누웨마루 거리 1년 지난 2018년 4월 11일 누웨마루 거리 선포식이 열린 뒤 주요 내빈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 위). 선포식 이후 1년 뒤 썰렁한 누웨마루 거리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사드 국내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자 사정이 달라졌다.

제주시는 중국인 관광객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관광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해 6년여 만에 바오젠 거리에서 누웨마루 거리로 바꿨다.

신제주의 지형이 마치 누에고치가 꿈틀대는 모습과 같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 명칭은 많은 인재와 부자가 나오는 ‘명당자리’임을 뜻한다. ‘누웨’는 누에, ‘마루’는 언덕을 뜻하는 제주어다.

그러나 바오젠 거리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이곳 한 액세서리 가게에서 일하는 신모(28)씨는 장사가 잘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신씨는 “밤낮 할 것 없이 거리가 텅 비었다. 중국인 발길이 줄어들면서 거리가 썰렁해지자 덩달아 한국인 발길도 줄었다”며 “인근 면세점이 문을 닫는 오후 8∼9시에만 잠깐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가 안되니 이참에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이나 하자며 너도나도 뜯어고치고 있고, 일대 빈 점포도 눈에 띄게 늘었다. 최근에는 상인들이 큰 손님인 중국인을 찾아 면세점 근처로 이전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날 거리에 위치한 4층 이상 건물 6곳이 점포를 모두 비운 채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도민·관광객보다 공사 중인 건설 노동자가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 중국인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화장품 가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년 넘게 화장품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인 A(23)씨는 “과거 하루 매출이 700∼8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00∼200만원까지 줄었다”며 “이마저도 가끔 들르는 중국인 관광객 덕분”이라고 말했다.

A씨는 “거리 명칭이 바뀌었다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베트남과 중동 국적 관광객이 가끔 보일 뿐이다”며 “주변에서는 이제 상권이 죽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 골목상권 활성화 중장기계획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 일대 상권에는 2016년 말 856개 업소가 성행했지만, ‘사드 한파’로 1년도 안 돼 105개 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2017년 10월 기준 751개 업소로 줄어들었다.

이후 관련 집계가 되지 않고 있지만, 상인들은 현재 그 수가 훨씬 더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드 보복’에 한산한 성산 일출봉 주차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관광개발사업 통한 관광진흥 한계 있다”
누웨마루 거리는 제주 관광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주를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은 2013년 1천85만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연간 관광객 1천만명 시대를 연 뒤 2014년 1천227만명, 2015년 1천366만명, 2016년 1천585만명으로 증가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7년 1천475만명, 2018년 1천431만명으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이는 2017년 3월 사드 사태가 불거진 뒤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은 2016년 306만1천522명에서 2017년 74만7천315명으로 무려 75.6%나 급감했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2016년 360만3천21명에서 2017년 123만604명으로 65.8% 줄었다.

게다가 내국인 관광객 역시 지난해 처음으로 전년 대비 3.2%나 줄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때 호황에 연간 관광객 2천만명 돌파도 얼마 남지 않았다던 ‘장밋빛 전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관광개발사업과 각종 난개발이 이어지면서 제주에 각종 숙박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났지만, 결국 갑작스러운 관광객 감소로 2만6천실 가까이 과잉 공급됐다.

멈춰버린 제주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손님을 잡기 위한 동종 업계의 과도한 출혈경쟁이 이어지면서 최근 2년간 숙박업소 1천102곳이 폐업하거나 휴업했다.

제주관광공사는 영업이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사업이 사드 여파 등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며 지난해 40억8천9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하자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서울 다음으로 외국인 방문 비율이 높았던 제주는 2017년 서울·경상·경기 지역에 이어 4순위로 밀려났다.

전문가들은 위기의 원인을 바오젠 거리의 몰락과 마찬가지로 “제주 관광이 중국인 관광객에게 과도하게 의존한 데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예쁘다, 제주의 봄 12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함덕 서우봉 해변을 찾은 관광객들이 봄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지역 관광성장을 이끌었던 외국인 관광객 증가추세가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순식간에 꺾였다는 것이다.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실질 소득이 줄어들고, 난개발과 예멘 난민 문제, 각종 범죄 등 지난해 불거진 각종 이슈로 인한 제주 이미지 손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초 나온 제3차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진흥계획수립 용역 보고서는 ‘기존 중국 위주의 국제 관광정책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와 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직항노선 개설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성수 제주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는 “단순히 자연 관광 위주의 홍보와 대규모 관광개발과 같은 건설 붐을 일으키는 방식의 관광진흥은 한계가 있다”며 “옛 방식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부가가치 높은 관광 콘텐츠 개발, 관광에 문화를 입혀서 질 높은 관광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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